여다야

여다야

여다야는 다윗 왕 시대에 아론 계열에 속한 제사장입니다. 다윗이 사독과 아히멜렉의 도움을 받아 여호와의 전에서 섬길 제사장들을 스물네 반열로 나눌 때, 둘째 제비가 여다야에게 뽑혔습니다(대상 24:7). 그때부터 그의 이름은 한 제사장 가문과 성전 섬김의 한 반열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여러 세기 뒤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나고 스룹바벨과 함께 돌아온 제사장 명단의 맨 앞에 여다야 자손이 나오며, 그 수는 구백칠십삼 명이었습니다(스 2:36; 느 7:39).

성경은 여다야 자신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말이나 행적, 아버지의 이름, 수명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기록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질서 있는 예배 안에서 그가 차지한 자리와 그의 이름을 이어 간 가문의 지속입니다. 그를 연구할 때는 이 침묵을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직분과 가계를 통해 여다야를 압니다.

그러나 그 가계는 주목할 만합니다. 그것은 다윗 아래에서 정비된 예배, 포로라는 재앙, 그리고 스룹바벨과 예수아 아래에서 이루어진 성전 재건을 하나로 잇습니다. 성경에서 여다야의 이름을 따라가 보면, 참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하나님께서 자기 제단에서 섬길 제사장직을 어떻게 보존하셨는지 보게 됩니다.

1. 이름의 어원과 의미

히브리어 이름은 יְדַעְיָה(예다야)입니다. ‘알다’를 뜻하는 동사 야다와 하나님의 이름을 줄인 야가 합쳐진 이름으로, 보통 ‘여호와께서 아신다’ 또는 ‘여호와께서 아셨다’로 풀이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말에는 돌보시고 택하신다는 뜻이 자주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 알았다고 하신 말씀이 그 예입니다(암 3:2). 이 이름은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눈여겨보시고 돌보신다는 믿음을 표현했을 수 있지만, 성경은 왜 이 이름을 지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번역 성경에서는 히브리어 이름이 다른 두 사람, 곧 예다야(יְדָיָה)라는 이름의 사람들도 비슷하게 표기되는데, 그 뜻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둘째 반열의 제사장과 혼동하지 않도록 아래에서 따로 언급합니다.

2. 역사적 배경과 성경 이야기

2.1 가문과 족보

여다야는 아론에게서 내려온 제사장 계열에 속했습니다. 대상 24:1-2에 따르면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아버지보다 먼저 죽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제사장직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통해 이어졌습니다. 반열을 나눌 때 엘르아살 자손에서 열여섯 명, 이다말 자손에서 여덟 명의 족장이 나왔습니다(대상 24:4). 본문은 여다야가 두 계열 가운데 어디에 속했는지 말하지 않으며, 그의 아버지 이름도 밝히지 않습니다.

역대상 24장 명단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이 이름들은 조상의 가문 우두머리들의 이름입니다(대상 24:6). 여다야는 다윗 시대에 그 가문의 우두머리였을 수도 있고, 그 가문이 이미 더 이른 조상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다윗 이후 이 이름은 한 제사장 가문과 그 섬김 반열의 이름으로 쓰였습니다.

2.2 주요 사건

핵심 사건은 제비뽑기입니다. 다윗은 엘르아살의 자손 사독, 이다말의 자손 아히멜렉과 함께 제사장들을 제비 뽑아 나누었는데, 어느 쪽도 편들지 않았습니다. 두 계열의 자손 가운데 모두 성소의 일을 다스리는 자와 하나님의 일을 다스리는 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대상 24:3-5). 레위 사람 서기관 스마야가 왕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족장들 앞에서 그 결과를 기록했습니다(대상 24:6). 첫째 제비는 여호야립, 둘째는 여다야에게 뽑혔습니다(대상 24:7). 이것이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는 정해진 차례가 되었습니다(대상 24:19). 다른 본문에는 반열들이 안식일에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이 나오는데(대하 23:8), 이는 한 주 단위로 교대했음을 시사합니다.

이 이름이 다시 나올 때는 세상이 바뀌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무너졌고 성전은 불탔으며 백성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첫 무리가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함께 돌아올 때 제사장들은 가문별로 기록되었고, 맨 처음 나오는 가문이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 구백칠십삼 명입니다(스 2:36; 느 7:39). 제사장은 모두 사천이백팔십구 명이었습니다(스 2:36-39). ‘예수아의 집’이라는 표현은 흔히 대제사장 예수아를 가리킨다고 보지만(스 3:2), 아홉째 반열의 우두머리 같은 다른 예수아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대상 24:11). 본문은 이 문제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여다야는 귀환 후 예루살렘에 거주한 제사장들 가운데 다시 나옵니다(대상 9:10; 느 11:10). 느헤미야 12장에는 스룹바벨과 함께 올라온 제사장의 우두머리들 가운데 여다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둘 나오며(느 12:6-7), 한 세대 뒤 대제사장 요야김 때에는 한 여다야 가문의 족장이 웃시, 다른 여다야 가문의 족장이 느다넬이었습니다(느 12:19, 21). 성경은 이 가운데 어느 가문이 다윗 시대의 반열을 이었는지 말하지 않으므로, 억지로 답을 정하지 않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분명한 것은 회복된 공동체 안에서도 여다야의 이름이 제사장의 섬김과 계속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때 제사장들은 다시 반열대로 세워져 하나님을 섬겼습니다(스 6:18).

3. 성품과 성경 이야기 속 역할

여다야의 개인적인 특성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가 열심이었는지 게을렀는지, 젊었는지 늙었는지 알 수 없으며, 그런 내용을 지어내는 것은 잘못입니다. 성경은 그를 직분으로 소개합니다. 그는 정해진 때에 여호와 앞에 서서 제사를 드리고 향을 사르며 백성을 가르칠 제사장 가문의 우두머리입니다.

그 후손의 이후 역사는 재앙 속에서도 정체성을 지킨 가문을 보여 줍니다.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 어떤 제사장 가문은 족보 기록을 찾지 못해,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날 때까지 제사장 직분에서 제외되었습니다(스 2:61-63). 반면 여다야 자손은 의심 없이 인정받았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보존된 그들의 이름은 포로 생활도 무너뜨리지 못한 섬김의 연속성을 증언했습니다.

4. 신학적 의미

4.1 하나님은 예배에 질서를 세우신다

제사장들을 반열로 나눈 것은 이스라엘의 예배가 즉흥에 맡겨지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며, 그분의 백성의 예배는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고전 14:33, 40). 여다야가 뽑은 제비는 그의 가문에 그 질서 안에서 고정되고 인정된 자리를 주었습니다.

4.2 제비와 하나님의 주권

제사장들을 제비로 배정한 것은 선택이 사람의 편애에 좌우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다고 가르칩니다(잠 16:33). 여다야에게 주어진 둘째 자리는 사람의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심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4.3 포로기를 관통한 신실하심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 여다야 자손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조용한 증언입니다. 성전은 무너졌지만 하나님은 제사장직이 사라지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제사장들을 돌아오게 하셔서 제단을 다시 쌓고 제사를 회복하게 하셨습니다(스 3:2-6). 천사가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 사가랴에게 나타났을 때에도 같은 반열 제도가 여전히 시행되고 있었으며, 사가랴는 제비를 뽑아 분향하는 일을 맡았습니다(눅 1:5, 8-9).

4.4 참 대제사장을 가리킴

제사장들이 대대로 교대하며 섬긴 것은 죽음 때문에 직분을 계속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히 7:23).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며,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위하여 항상 살아서 간구하십니다(히 7:24-25). 제사장들은 날마다 서서 같은 제사를 반복해서 드렸지만,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번의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히 10:11-12). 여다야 가문 같은 이들의 신실한 섬김은 길을 예비했고, 단번에 이루신 그리스도의 사역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더 분명히 보게 합니다.

4.5 혼동하지 말아야 할 인물

여다야는 여호와께서 나단을 통해 솔로몬에게 주신 이름인 여디디야와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삼하 12:25). 그는 시므리의 아들인 시므온 사람(대상 4:37)도 아니고, 예루살렘 성벽 일부를 보수한 하루맙의 아들(느 3:10)도 아닙니다. 이 두 사람은 위에서 말한 다른 히브리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돌아온 포로들 가운데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슥 6:10, 14에도 나오지만, 그가 이 제사장 가문에 속했는지는 본문이 말하지 않습니다.

5. 유산과 성경 언급

여다야는 대상 24:7에서 제사장 반열 가운데 둘째 제비를 받습니다. 같은 이름의 제사장이 대상 9:10과 느 11:10에서 포로 후 예루살렘에 거주한 사람들 가운데 나오며, 느헤미야는 그를 요야립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 구백칠십삼 명은 스 2:36과 느 7:39에서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옵니다. 느 12:6-7에는 스룹바벨과 함께 올라온 제사장의 우두머리 가운데 여다야라는 두 제사장이 나오며, 웃시와 느다넬이 이끈 그들의 가문은 느 12:19과 느 12:21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유산은 포로기 전후로 여호와를 섬긴 제사장 가문입니다. 성경은 그를 위대한 업적 때문이 아니라, 그의 후손이 신실하게 지켜 낸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 때문에 기억합니다.

6. 오늘을 위한 적용

여다야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아신다’는 뜻입니다. 평범하고 대부분 눈에 띄지 않게 섬기는 신자들에게 이것은 귀한 진리입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을 아시며(딤후 2:19), 더 놀라운 일은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신다는 것입니다(갈 4:9; 고전 8:3).

여다야 가문의 제사장들은 자기 차례가 오면 섬겼습니다. 한 주 또 한 주, 역사에 거의 기록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모든 신자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벧전 2:9). 그리스도의 제사가 완전하므로 우리는 짐승을 제물로 드리지 않지만,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고(롬 12:1) 그분의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인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립니다(히 13:15).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맡겨진 자리에서 신실한 것이 그 예배의 일부입니다.

끝으로, 여다야 가문이 포로기를 견디고 살아남은 일은 삶과 예배의 익숙한 틀이 흔들릴 때 우리를 격려합니다. 하나님은 상실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보존하시고 다시 섬기도록 돌아오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확신은 사람의 가계가 아니라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분은 후계자가 결코 필요 없는 대제사장이시며, 우리를 위해 항상 살아서 간구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