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난
하난은 익다랴의 아들로, 성경에서 단 한 번 예레미야 35:4에 언급된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와 함께 그를 소개하며, 그의 아들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집에 방을 가지고 있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바로 그 방으로 레갑 사람들을 데려가 그들 앞에 포도주를 내놓았는데, 이는 그의 사역에서 가장 생생한 상징적 교훈 가운데 하나다.
그 밖에 성경은 그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의 말이나 행적, 태어난 때나 죽은 때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나오는 이 한 구절은 그를 유다 왕국 마지막 수십 년의 성전 안에 두며, 구약이 하나님을 특별하게 섬긴 사람들에게 붙이는 칭호와 그를 연결한다.
이 글은 그 구절을 주의 깊게 살피고, 본문이 말하는 것과 해석자들이 추측한 것을 구별하며, 이 짧은 언급이 오늘의 신자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지 묻는다.
1. 이름의 어원과 의미
히브리어 이름 חָנָן(Ḥānān)은 ‘은혜를 베풀다, 호의를 보이다’를 뜻하는 동사 ḥānan에서 왔다. ‘은혜로운’ 또는 ‘그가 은혜를 베푸셨다’는 뜻이며, 하나냐(Ḥănanyāh,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셨다’)나 요하난 같은 이름의 줄인 형태로 보인다. 그의 아버지 이름 익다랴(Yigdalyāhû)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또는 ‘여호와께서 크게 하시리라’는 뜻이다. 두 이름 모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향한 작은 신앙고백이다.
하난은 흔한 이름이어서 구약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들도 여럿 있다(역대상 8:23, 38; 11:43; 에스라 2:46; 느헤미야 8:7; 10:10, 22, 26; 13:13). 그들은 다른 가문, 다른 시대의 다른 인물들이다. 예레미야 35장의 하난은 오직 그의 아버지 익다랴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로만 식별된다.
2. 역사적 배경과 성경의 이야기
2.1 가문과 족보
본문이 전하는 가족 정보는 두 가지뿐이다. 하난은 익다랴의 아들이었고, 그의 이름으로 알려진 아들들이 있었다. 그의 지파는 언급되지 않으며, 그가 제사장이었는지 레위인이었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이를 넘어서는 그의 계보에 관한 주장은 모두 추측일 것이다.
‘하난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은 가장 자연스럽게 그의 자녀들을 가리킨다. 어떤 해석자들은 이것이 구약에서 ‘선지자의 제자들’, 문자적으로 ‘선지자의 아들들’이라고 말하는 방식처럼(열왕기하 2:3, 5) 한 무리의 제자들을 뜻할 수도 있다고 제안한다. 이것은 가설이며, 본문은 이 문제를 결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람’(ʼîš hāʼĕlōhîm)이라는 칭호는 의미가 크다. 구약에서 이 칭호는 모세(신명기 33:1), 사무엘(사무엘상 9:6-10), 엘리야(열왕기상 17:18, 24), 엘리사(열왕기하 4:9), 다윗(느헤미야 12:24, 36)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선지자들(열왕기상 13:1)에게 주어진다. 이는 대개 선지자나 하나님의 특별한 종으로 인정받은 사람을 가리킨다. 대부분의 번역은 이 칭호를 하난에게 적용한다. 그러나 히브리어 어순은 이것을 익다랴에게 적용하는 것도 허용하며, 개역개정은 ‘하나님의 사람 익다랴의 아들 하난’이라고 옮겨 익다랴에게 붙인다. 어느 쪽이든 이 가문은 하나님께 헌신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과 연결되어 있었다.
2.2 주요 사건
예레미야 35장은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때’(예레미야 35:1)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느부갓네살의 군대 때문에 레갑 사람들은 장막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피해 와 있었다(예레미야 35:11).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들을 성전의 한 방으로 데려가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고 명하셨다(예레미야 35:2).
예레미야는 야아사냐와 레갑 사람의 온 가문을 데리고 여호와의 집으로 가서 하난의 아들들의 방에 들어갔다. 그 방은 고관들의 방 곁이요, 문을 지키는 살룸의 아들 마아세야의 방 위에 있었다(예레미야 35:3-4). 성전의 뜰 주위에는 이런 방이 많았는데, 창고와 모임 장소, 제사장과 관리들의 업무 공간으로 쓰였다(역대상 28:12; 느헤미야 13:4-9). 위치 묘사는 정확하다. 고관들의 방 옆이며, 성전에서 중요한 직분이었던 문지기의 방 위였다(열왕기하 25:18; 예레미야 52:24). 이는 하난의 가문이 성전 구역 안에서 인정받는 자리를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 방에서 예레미야는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을 레갑 사람들 앞에 놓았지만, 그들은 거절했다. 그들의 조상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집을 짓지 말며, 포도원을 가꾸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예레미야 35:5-10; 참조 열왕기하 10:15-23). 하나님은 사람의 명령에 대한 그들의 신실함을 사용하여, 자신의 거듭된 부르심을 듣지 않은 유다를 책망하셨고(예레미야 35:12-17), 요나답에게서 그분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으리라고 약속하셨다(예레미야 35:18-19).
본문은 왜 하필 이 방이 선택되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여호야김 치하에서 예레미야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왕에게서 적대를 받았다(예레미야 26:7-11; 36:23-26). 어떤 이들은 하난의 아들들이 선지자에게 호의적이어서 자기 방을 그에게 내주었다고 추측한다. 나중에 바룩이 사반의 아들 그마랴의 방에서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낭독한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예레미야 36:10). 이는 타당한 가설이지만 성경이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3. 성품과 성경 이야기 속의 역할
성경이 하난의 말이나 행동을 전혀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성격이나 감정을 묘사할 수 없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단 하나의 묘사, 곧 그가 하나님의 사람과 연결되어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 속하여 그분을 섬긴 사람, 아마도 선지자적 방식으로 섬긴 사람의 평판을 나타낸다.
이야기 속에서 그의 역할은 무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의 아들들의 방은 살아 있는 비유의 무대가 되었다. 여호와의 집 안, 하나님의 사람과 연결된 방에서 레갑 사람들의 순종은 유다 백성의 불순종을 드러냈다. 하난 자신은 이야기 속에서 말하지 않지만, 그의 이름은 그 장면에 장소와 무게를 부여한다.
4. 신학적 의미
4.1 쇠퇴의 시대에 신실한 종들
여호야김의 통치는 불의와 영적 반역의 시대였다(예레미야 22:13-17; 열왕기하 23:36-37). 성전 안에 하나님의 사람과 그 아들들이 언급된다는 사실은, 그런 시대에도 여호와께서 엘리야 때처럼 신실한 사람들을 남겨 두셨음을 일깨워 준다(열왕기상 19:18; 로마서 11:4-5).
4.2 순종과 하나님의 말씀
하난의 아들들의 방은 예레미야 35장의 핵심 교훈이 가르쳐진 곳이다. 한 가문이 사람인 조상의 명령을 여러 세대 동안 지킬 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백성은 얼마나 더 그들의 주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겠는가(예레미야 35:14). 이 장은 불순종에 대한 심판과 신실한 자에게 주시는 긍휼의 약속을 함께 묶는다(예레미야 35:18-19).
4.3 성전의 방에서 그리스도께로
몇 년 뒤 성전과 그 모든 방은 바벨론 사람들에 의해 불탔다(예레미야 52:13). 성경은 하난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삼지 않으며, 우리도 그렇게 억지로 읽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이야기는 하나님과 그 백성이 만나는 참된 장소가 건물 안의 한 방이 아니라, 자기 육체를 성전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자신이심을 보여 준다(요한복음 2:19-21). 그리고 그분을 통해 교회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된다(고린도전서 3:16; 에베소서 2:19-22).
5. 유산과 정경 속 언급
익다랴의 아들 하난은 예레미야 35:4에만 나온다. 이 구절은 그의 아들들의 방을 예레미야가 레갑 사람들을 맞이한 장소로 밝힌다. 이 구절을 둘러싼 예레미야 35:1-19은 그 만남의 배경을 알려 준다. 구약이나 신약의 다른 곳에서는 그가 언급되지 않으며, 성경은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그와 그의 아들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의 유산은 말로는 짧지만 의미가 깊다. 하나의 이름, 한 아버지, 하나님의 집 안의 방 하나, 그리고 한 생애를 요약하는 칭호다. 성경에서 이렇게 짧은 묘사로 기억되는 사람은 드물며, 이보다 더 영예로운 묘사도 드물다.
6. 오늘을 위한 적용
하난의 생애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한마디로 우리에게 요약되어 전해진다. 우리는 그의 업적을 알지 못하지만, 그가 어떻게 기억되었는지는 안다. 이것은 우리에게 단순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삶이 한 문장으로 줄어든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신약은 같은 표현을 성경으로 빚어진 신자들에게 적용하며, 그들이 악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도록 부르신다고 말한다(디모데전서 6:11; 디모데후서 3:16-17).
그의 가문의 방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 장소가 되었다. 그들이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는 말은 없다. 그들에게는 그저 공간이 있었고, 그 공간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그것을 필요로 한 날 하나님의 뜻을 섬겼다. 우리의 집과 시간과 자원도 같은 방식으로 드려져,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순종될 수 있다.
끝으로, 하난의 아들들의 방에서 일어난 장면은 우리를 온 마음을 다한 순종으로 부른다. 레갑 사람들은 사람인 조상에게 신실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신실해야 할 더 큰 이유가 있다.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령으로 우리를 그분의 성전으로 삼으신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다(히브리서 1:1-2; 고린도전서 6: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