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돌은 이스라엘 땅 지중해 연안, 갈멜 산맥 조금 남쪽에 있던 고대 가나안 성읍이다. 성경에서 널리 알려진 지명은 아니지만 몇몇 중요한 장면에 등장한다. 여호수아에 맞선 북방 연합군, 패배한 왕들의 목록, 므낫세 지파의 기업,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한 지파들에 대한 담담한 기록, 그리고 솔로몬 왕국의 행정 구역이 그것이다.

돌의 중요성은 지리에서 나왔다. 대부분 곧고 모래가 많은 해안에서 돌은 드문 자연 정박지를 가지고 있었고, 애굽과 페니키아와 시리아를 잇는 해안 대로 곁에 있었다. 이런 성은 바다로 나가는 관문이자 육로의 검문소였기에, 가나안 사람, 해양 민족, 페니키아 사람, 이스라엘, 앗수르, 헬라 사람이 모두 이곳을 탐냈다.

성경은 돌에 대해 몇 구절만 기록하며, 그곳의 일상생활은 거의 말하지 않는다. 고고학과 몇몇 고대 문헌이 그림의 일부를 채워 주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내용의 기준은 여전히 성경 본문이다.

1. 어원과 의미

히브리어 이름은 도르(דּוֹר, 때로는 דֹּאר)이다. 같은 어근이 흔히 세대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도르에 나타나며, 관련된 셈어 단어들은 원, 울타리, 거처라는 뜻과 연결된다. 그래서 많은 학자는 이 지명이 거처나 정착지 정도의 뜻이었을 것으로 보지만, 이는 어근에서 추론한 것일 뿐 확실하지 않으며, 이름 자체가 이스라엘이 그 땅에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을 수도 있다.

몇몇 본문은 이 성과 함께 나밧 돌(נָפַת דּוֹר, 또는 נָפוֹת דּוֹר)이라는 표현을 쓴다. 나밧의 뜻은 논란이 있다. 많은 번역은 이를 돌의 높은 곳이나 비탈로 이해하는데, 해안 평야 뒤에 솟은 갈멜 산맥을 가리킬 수 있다. 다른 이들은 성 주변의 해안 지역을 뜻한다고 본다. 어느 쪽이든 이 표현은 두 번째 성이 아니라 돌에 속한 지역을 가리킨다.

2. 역사적 배경과 성경의 용례

위치

돌은 오늘날 탄투라 마을 곁 해안의 텔 도르(키르벳 엘부르즈)로 확인된다. 가이사랴에서 북쪽으로 약 13킬로미터, 갈멜산 끝에서 남쪽으로 약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언덕은 양쪽에 작은 만이 있는 곶 위에 있고, 그 만들이 항구 역할을 했다. 그 뒤로 좁은 해안 평야가 펼쳐지고, 더 내륙으로 이스르엘 골짜기와 므깃도로 이어지는 고갯길이 있다.

이스라엘 이전과 사사 시대

후기 청동기 시대에 돌은 가나안 성읍이었다. 애굽 문헌 웬아문 여행기(주전 1100년경)는 사절 웬아문이 돌에 들른 일을 기록하며, 이곳을 청동기 말의 격변 이후 해안에 정착한 해양 민족 가운데 하나인 체케르 사람의 성읍이라고 부른다. 발굴을 통해 견고한 성벽, 항만 시설, 이후 수백 년에 걸친 페니키아 문화의 흔적이 드러났다. 이는 초기 이스라엘이 이 해안 성읍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성경의 그림과 잘 맞는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돌은 통일 왕국 시대에 이스라엘의 관할 아래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솔로몬이 그 지역에 관장을 두었기 때문이다. 왕국이 나뉜 뒤에는 북왕국에 속했다. 주전 732년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이 지역을 정복하자 돌은 앗수르 한 속주의 중심지가 되었다. 후에 시돈 왕 에슈무나자르의 페니키아 비문은 바사 왕이 돌과 욥바를 시돈에 주었다고 자랑한다. 헬라 시대에 이 성은 요새화된 항구였으나, 헤롯이 조금 남쪽에 가이사랴의 큰 항구를 세운 뒤 쇠퇴했다.

3. 주요 본문

여호수아 11:1-2에서 하솔 왕 야빈은 이스라엘을 치려고 북방 왕들의 연합군을 모으는데, 그 가운데 아라바와 평지와 서쪽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도 있었다. 이렇게 돌은 연합군의 서쪽 해안 구성원으로 나타난다. 여호와께서는 메롬 물가에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고(여호수아 11:7-8), 연합군의 규모가 여호와의 전쟁의 결과를 정하지 못함을 일깨우신다.

여호수아 12:23은 나밧 돌의 돌 왕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쳐서 이긴 서른한 왕 가운데 하나로 기록한다. 이 목록은 전장에서 왕을 이긴 일을 기록할 뿐, 모든 성을 곧바로 차지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구분은 뒤이은 본문에서 중요해진다.

여호수아 17:11-12에 따르면 므낫세는 잇사갈과 아셀 지역 안에서 벧스안, 이블르암, 돌의 주민, 엔돌, 다아낙, 므깃도와 그 마을들을 받았다. 그러나 본문은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했고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했다고 담담히 덧붙인다. 여호수아 17:13은 이스라엘이 강성해진 후 가나안 사람에게 노역을 시켰으나 다 쫓아내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사사기 1:27-28은 불완전한 정복을 기록하면서 같은 그림을 되풀이한다. 므낫세는 돌과 그 마을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했고, 이스라엘이 강성해지자 그들을 쫓아내는 대신 노역을 시켰다. 사사기는 이 실패를 이스라엘의 이후 타협과 우상 숭배가 자라난 토양으로 보여 준다(사사기 2:1-3).

열왕기상 4:11에서 왕실의 먹을 것을 공급한 솔로몬의 열두 관장 가운데 벤아비나답은 나밧 돌 온 땅을 맡았고, 솔로몬의 딸 다밧을 아내로 두었다. 이 혼인은 해안 지역이 얼마나 전략적이었는지 보여 준다. 왕은 그곳을 자기 가족과 연결된 사람에게 맡겼다.

끝으로 역대상 7:29은 돌과 그 마을들을 벧스안, 다아낙, 므깃도와 함께 요셉 자손이 거주한 곳으로 기록한다. 역대기 기자는 돌을 요셉 집의 기업 일부로 기억한 것이다.

4. 신학적 의미

돌은 약속과 소유 사이의 간격을 보여 준다. 그 땅은 제비 뽑아 실제로 므낫세에게 주어졌지만, 지파는 받은 것을 온전히 차지하지 못했다. 성경은 이를 숨기지 않고 선물과 실패를 함께 기록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확실하지만, 백성은 믿음과 순종으로 그것을 받도록 부름받았다.

노역에 대한 언급도 의미심장하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을 굴복시킬 힘이 있었지만, 그들에 관한 명령에 순종하기보다 그들에게서 이익을 얻는 쪽을 택했다. 사사기는 이런 실용적으로 보이는 타협이 그 땅에 오래 남는 영적 위험을 남겼음을 보여 준다. 이 일은 편한 것은 붙들고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신 것은 소홀히 하는 부분적 순종을 경계한다.

동시에 솔로몬 행정에서 돌이 차지한 자리는 여호와의 뜻이 계속 전진했음을 보여 준다. 여호수아 때 차지하지 못한 곳이 다윗과 솔로몬 때에는 약속된 경계에 따라 이스라엘의 다스림 아래 들어왔다(열왕기상 4:20-21). 하나님은 백성이 더딜 때에도 대대로 오래 참으시고 신실하시다.

5. 유산과 정경 속 언급

정경에서 돌은 여호수아, 사사기, 열왕기상, 역대상에만 나오며 신약은 이 성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 기억은 유대와 헬라 문헌에 남았고, 유적지는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이 발굴된 해안 언덕 가운데 하나로, 1980년 이후 이스라엘과 국제 발굴단이 오랫동안 조사해 왔다. 성벽, 항만 구조물, 페니키아와 헬라 토기, 로마 건축물 같은 발견은 독자가 성경 본문의 배경을 그려 보도록 돕지만, 고고학만으로 본문의 모든 세부를 입증할 수는 없다.

돌은 땅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에 있었기에, 그 역사는 이스라엘이 살았던 국제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은 창이 된다. 애굽 사절, 해양 민족, 페니키아 상인, 제국의 총독들이 이곳을 지나갔다. 성경은 하나님 백성의 이야기를 상상의 풍경이 아니라 이 실제적이고 복잡한 세계 안에 둔다.

6. 오늘을 위한 적용

돌에 관한 짧은 성경 기록은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셨지만 우리가 아직 차지하지 못한 삶의 영역이 있는가?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았지만(에베소서 1:3), 옛 삶에 속한 것을 죽이라는 부르심도 받았다(골로새서 3:5). 므낫세가 돌의 가나안 사람과 함께 살았던 것처럼 죄와 편안히 공존하는 것은 결코 중립적인 타협이 아니다.

돌은 또한 인내를 격려한다. 한 세대에게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다른 세대에 이루어졌다. 백성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 일을 이루실 것이다(빌립보서 1:6). 우리가 더디거나 두 마음을 품었던 자리에서 답은 낙심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결정적 승리를 거두신 분을 의지하는 새로운 신뢰와 순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