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동성애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죄인가?
성경은 동성 간의 성적 행위를 죄로 규정한다. 이것은 특정 문화의 편견이 아니라, 창조 질서와 구속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증언이다. 동시에 성경은 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냉담한 정죄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먼저 텍스트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창조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방식은 단순한 생물학적 사실 이상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이 구절은 인류를 정의하면서 성별의 차이와 상호 보완성을 하나님의 형상 개념 안에 위치시킨다. 이어서 창 2:24은 남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고 선언한다. 이 구조는 단순한 규범이 아니라 하나님이 설계하신 관계의 형태다.
예수님 자신도 결혼에 관한 논쟁에서 이 창세기 본문으로 돌아가신다(마 19:4-5). 그분은 창조 질서를 근거로 말씀하신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성경의 성 윤리가 단순히 레위기 법전의 문화적 산물이 아니라 창조의 논리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예수님 스스로 확인하셨기 때문이다.
구약과 신약이 함께 말하는 것
레위기 18:22과 20:13은 남성 간의 성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며, 이를 "가증한 일"이라 부른다. 일부는 이 본문들이 레위기의 의식법에 속하므로 신약 시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같은 장에서 근친상간, 간음, 수간도 함께 금지되는데, 이것들이 의식법이라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이 목록들은 도덕법에 속한다.
신약은 이 증언을 더욱 명확하게 한다. 롬 1:26-27에서 바울은 동성 간의 성적 관계를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기를 거부한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로 묘사한다. 그는 이를 "자연을 역리로" 사용하는 것이라 부르는데, 이 "자연"은 사회적 관습이 아니라 창조 질서를 가리킨다. 고전 6:9-10은 음란한 자들의 목록에 "남색하는 자"를 포함시키며, 딤전 1:10도 같은 맥락에서 이를 율법에 위배되는 행위로 언급한다.
이 본문들이 단순히 고대 세계의 착취적 관계나 신전 매춘만을 가리킨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그러나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 단어 아르세노코이타이(arsenokoitai)는 레위기 18장과 20장의 헬라어 역본(70인역)에서 직접 가져온 합성어로, 상호 동의한 성인 간의 동성 관계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언어적 증거는 이 좁은 해석을 지지하지 않는다.
흔한 오해들을 직면하기
첫째, "예수님은 동성애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침묵은 허용의 표시가 아니다. 그분은 성을 창조 질서 안에서 남녀의 결합으로 정의하셨고, 이 정의 자체가 다른 모든 형태의 성적 결합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담는다. 침묵 논증은 예수님이 근친상간에 대해서도 직접 언급하지 않으셨다는 사실로 무너진다.
둘째, "동성애적 지향이 죄라면 하나님이 불공평하다"는 물음이 있다. 성경은 성적 끌림 자체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구분한다. 우리 모두는 타락한 욕망을 가지고 태어나며, 그 욕망이 무엇이든 그것에 굴복하는 것이 죄다. 이성애자도 혼외 성관계의 욕망과 씨름하며, 그 욕망 자체보다 그 욕망을 쫓는 행위가 죄의 영역이다.
셋째, "사랑의 하나님이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금지할 리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성경에서 사랑은 감정의 강도로 정의되지 않는다. 헤세드(hesed),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은 감정을 넘어 진리와 헌신으로 이루어진다. 사랑하기 때문에 좋은 것처럼 느껴지는 모든 것이 사랑에 부합하는 건 아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해로운 것을 좋아하더라도 허용하지 않는다.
교회는 어떻게 서야 하는가
고전 6:9-11은 이 주제에서 가장 결정적인 본문 중 하나다. 바울은 음행하는 자들, 우상 숭배자들, 간음하는 자들, 남색하는 자들의 목록을 나열한 뒤 이렇게 말한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과거 시제다. 고린도 교회 안에 이 싸움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복음으로 변화받았다.
이것은 동성애적 지향을 가진 모든 사람이 자동으로 이성애자가 된다는 약속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욕망 패턴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씻음, 거룩함,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선언이다. 교회는 이 긴장을 정직하게 안아야 한다. 동성애적 끌림을 경험하는 성도들을 경멸하거나 투명 인간으로 취급하는 교회는 고린도전서 6장을 아직 읽지 않은 교회다.
진리와 은혜는 대립하지 않는다. 성적 행위의 경계를 분명히 말하는 것과 그 경계 안에서 씨름하는 사람 곁에 머무는 것은 같은 사랑의 두 얼굴이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다(요 8:11). 정죄의 부재와 죄에서의 부르심이 한 문장 안에 있다.
그리스도가 이 모든 것을 어디로 데려가는가
성경의 성 윤리는 금지의 목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과 관계,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가리키는 언어다(엡 5:31-32). 바울은 결혼을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신 신비의 그림자로 이해한다. 이것이 성경이 성에 대해 그토록 진지한 이유다. 성은 단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의 형상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특정 공동체를 배제하는 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같은 복음 앞으로 부르는 일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설계에서 벗어난 욕망을 가지고 있고, 우리 모두에게는 씻음이 필요하다. 그 씻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만 온다.
주요 성경 구절
창 1:27 · 창 2:24 · 레 18:22 · 롬 1:26-27 · 고전 6:9-11 · 마 19:4-5 · 엡 5:31-32 · 요 8:11
자주 묻는 질문
동성애적 끌림을 느끼는 것 자체도 죄인가?
성경은 유혹이나 내면의 끌림 자체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구분한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가 없으셨다(히 4:15). 동성애적 지향을 경험하는 것은 타락한 세상에서 우리가 씨름하는 많은 욕망 패턴 중 하나다. 죄는 그 욕망을 행동으로 실현할 때 시작된다. 씨름 자체는 은혜를 더욱 구하게 만드는 자리가 될 수 있다(고후 12:9-10).
성경에서 동성애를 금지하는 구절들은 고대 문화에만 해당되지 않는가?
동성 커플을 사랑으로 대하면 그 관계를 인정하는 것 아닌가?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긍정하지 않는다. 좋은 의사는 환자가 원한다고 해서 해로운 처방을 내리지 않는다. 성경이 어떤 관계를 죄로 규정하면서도 그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라고 부르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을 대하신 방식이 그 모범이다(요 8:1-11). 진리와 은혜는 함께 가야 한다.
동성애자는 교회에 나올 수 없는가?
고린도 교회에는 이미 동성 행위의 과거를 가진 성도들이 있었다(고전 6:9-11). 교회는 완성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씻음을 받고 변화 중에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동성애적 끌림을 경험하면서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려 씨름하는 사람은 환영받아야 한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죄를 승인하는 것도, 사람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라, 모든 사람을 복음 앞으로 부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