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레먀
셀레먀는 느헤미야 시대 예루살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단 한 구절, 느헤미야 13:13에만 나오는데, 느헤미야는 그를 한 서기관, 한 레위인, 한 보좌관과 함께 성전 곳간을 맡은 곳간지기로 세웠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충직한 자로 여겨졌고, 그들의 직무는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성경이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우리는 그의 나이도, 아버지의 이름도, 어느 반열의 제사장이었는지도, 그가 한 말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를 언급하는 단 한 문장에는 분명한 인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기에 선택되었고, 그때는 하나님의 전을 관리하는 일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무너진 시기였습니다.
그러므로 셀레먀의 이야기는 평범한 직무를 신실하게 감당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속한 자원을 맡은 모든 신자에게 말하며, 아들로서 하나님의 집을 맡아 신실하신 분을 가리킵니다.
1. 이름의 어원과 의미
히브리어 이름 셀레먀(שֶׁלֶמְיָה, 셸레먀, 셸레먀후라고도 씀)는 샬롬과 같은 어근 sh-l-m에 하나님의 이름 YHWH의 줄임꼴 야가 결합된 것입니다. 이 어근에는 온전함, 완성, 갚음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름은 보통 ‘여호와께서 갚으셨다’ 또는 ‘여호와께서 회복하셨다’로 이해되지만, 어떤 학자들은 ‘여호와는 평강이시다’ 또는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온전함’에 가까운 뜻을 선호합니다. 정확한 뉘앙스는 불확실합니다.
이 이름은 유다 왕국 말기와 포로기 이후에 비교적 흔했기 때문에, 성경에는 이 이름을 가진 여러 사람이 나옵니다. 본문은 이름의 뜻을 이 제사장의 삶과 연결하지 않으며, 그렇게 하는 것은 추측일 것입니다.
2. 역사적 배경과 성경 이야기
2.1 가문과 족보
그에 관한 개인 정보는 셀레먀가 ‘제사장’, 곧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 가문의 일원이었다는 것뿐입니다. 본문은 그의 아버지나 가문을 밝히지 않습니다. 에스라서나 느헤미야서의 어떤 제사장 족보도 그와 확실하게 연결할 수 없습니다.
그를 셀레먀라는 이름의 다른 사람들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에스라 시대에 이방 여인과 결혼한 두 평민(에스라 10:39, 41), 성벽을 중수한 하나냐의 아버지(느헤미야 3:30), 예레미야 시대의 여러 사람(예레미야 36:14, 26; 예레미야 37:3, 13), 그리고 다윗 시대의 문지기(역대상 26:14)가 그들입니다.
2.2 주요 사건
셀레먀의 임명은 느헤미야서의 마지막 장에 속합니다. 느헤미야는 십이 년 동안 유다를 다스린 뒤 아닥사스다 왕 제삼십이년, 곧 주전 433년경에 왕에게 돌아갔고, 얼마 후 왕의 허락을 받아 다시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느헤미야 13:6-7). 그가 없는 동안 여러 폐단이 스며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의 방들을 맡았고 도비야와 연결되어 있던 제사장 엘리아십은 성전 뜰에 도비야를 위해 큰 방을 마련해 주었는데, 그곳은 전에 소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레위인과 노래하는 자와 문지기들에게 줄 십일조를 두던 곳이었습니다(느헤미야 13:4-5). 이 엘리아십이 같은 이름의 대제사장(느헤미야 3:1; 느헤미야 13:28)과 같은 인물인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도비야의 세간을 밖으로 내던지고, 그 방들을 정결하게 한 뒤 그릇과 제물을 다시 들여놓았습니다(느헤미야 13:8-9).
그는 또 레위인들이 받을 몫을 받지 못해, 레위인과 노래하는 자들이 살기 위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느헤미야 13:10). 그는 민장들을 꾸짖으며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고 묻고, 레위인들을 다시 그 자리에 세웠습니다. 그러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곳간에 들여왔습니다(느헤미야 13:11-12).
바로 그때 느헤미야는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곳간지기로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을 버금으로 삼았습니다(느헤미야 13:13). 히브리어는 그들을 ‘충직한’ 또는 ‘믿을 만한’이라는 뜻의 네에마님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아멘과 같은 어근입니다. 그들의 임무는 곳간에 들어오는 것을 받아 형제들에게 공정하게 나누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임명 직후 기도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느헤미야 13:14).
3. 성품과 성경 이야기 속 역할
본문은 그의 성품 가운데 한 가지만 말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셀레먀는 충직한 자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느헤미야 개인의 의견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동사는 다른 사람들도 인정한 평판을 암시합니다. 성전 방들을 맡은 사람이 자기 지위를 이용해 힘 있는 친척에게 특혜를 준 상황에서, 믿을 만한 제사장을 세운 것은 바로잡는 일의 일부였습니다.
이 무리의 구성도 의미가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곳간을 한 사람에게만 맡기지 않고, 제사장과 서기관과 레위인에게, 그리고 보좌관에게 함께 맡겼습니다. 많은 해석자들은 여기서 관련된 집단들을 대표하고 서로 책임을 지게 하는 의도적인 균형을 봅니다. 본문이 이를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맡았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성경이 기록하지 않은 감정이나 말이나 업적을 셀레먀에게 덧붙여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대로 그를 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는 정직함 덕분에 하나님과 형제들에게 속한 것을 맡기에 합당했던 제사장이었습니다.
4. 신학적 의미
4.1 하나님의 전은 버려져서는 안 된다
얼마 전 백성은 처음 익은 열매와 십일조를 가져오겠다고 엄숙히 약속하며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했습니다(느헤미야 10:35-39; 느헤미야 12:44도 보라). 13장의 위기는 그런 약속이 얼마나 빨리 깨질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아마도 이 시기와 가까운 때에 사역했을 선지자 말라기도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백성을 책망하며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이라고 촉구했습니다(말라기 3:8-10). 셀레먀의 임명은 언약이 요구하는 것을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한 걸음이었습니다.
4.2 청지기의 표지인 충성
성경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관리하는 사람의 핵심 자질로 충성을 거듭 제시합니다. 바울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씁니다(고린도전서 4:2). 초대 교회가 매일의 구제를 맡을 사람이 필요했을 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들을 찾았습니다(사도행전 6:1-6). 바울 자신도 예루살렘을 위한 연보를 다루면서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했습니다(고린도후서 8:20-21). 셀레먀는 이러한 충성된 관리자들의 계보에 서 있습니다.
4.3 하나님의 집을 맡아 신실하신 그리스도
히브리서는 종으로서 하나님의 온 집에서 신실했던 모세와, 아들로서 하나님의 집을 맡아 신실하신 그리스도를 대조합니다(히브리서 3:1-6). 셀레먀는 그리스도의 모형이 아니며 본문도 그렇게 암시하지 않지만, 그의 소박한 직무는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게 도와줍니다. 인간 청지기는 엘리아십처럼 실패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는 결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에게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며(에베소서 1:3), 신실한 대제사장으로서 각 지체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히브리서 2:17).
5. 유산과 정경 속 언급
제사장 셀레먀는 느헤미야 13:13에만 나옵니다. 다른 어떤 본문도 그를 확실하게 언급하지 않으며, 그를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들과 동일시하려는 시도는 추측입니다. 그가 임명된 배경은 느헤미야 13:4-14에, 그가 관리한 의무의 배경은 느헤미야 10:35-39와 느헤미야 12:44-47에 있습니다.
그의 유산은 말로는 짧지만 의미로는 큽니다. 성경은 그를 한 가지 때문에 기억합니다.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의 실패를 정직하게 기록하는 책 속에서, 이 단순한 칭찬은 두드러집니다.
6. 오늘을 위한 적용
첫째, 셀레먀는 믿을 만함이 영적인 덕목임을 일깨웁니다. 교회와 사역과 가정에는 다른 사람에게 속한 돈과 시간과 책임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누가복음 16:10).
둘째, 그의 이야기는 함께 책임지는 것의 가치를 보여 줍니다. 느헤미야는 재능 있는 한 개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책임이 분명한 팀을 만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자원을 투명하고 공동으로 관리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것은 의심 때문이 아니라 정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의 임무는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충성된 청지기직은 자원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섬기는 사람들과 필요한 사람들에게 닿도록 하는 것입니다. 레위인들이 소홀히 여겨졌을 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손상되었습니다. 사역하는 이들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의 집을 존중하는 일의 한 부분입니다(갈라디아서 6:6).
마지막으로, 셀레먀는 완전히 신실하신 주님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충성은 작고 불완전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분은 언젠가 자기 종들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마태복음 25:2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곳간에서 우리가 믿을 만한 자로 발견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