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라야

스라야

스라야는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바벨론 사람들에게 함락될 때의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불탄 뒤,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를 유다의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잡아 리블라로 끌고 갔고, 느부갓네살 왕이 그곳에서 그들을 죽였습니다(열왕기하 25:18-21; 예레미야 52:24-27).

그러므로 그는 성경이 첫 성전에서 섬긴 사람으로 이름을 밝힌 마지막 대제사장입니다. 그의 죽음은 한 시대의 끝을 표시합니다. 그와 함께 솔로몬 성전의 제사장 직무는 폭력적으로 끝났고, 본문은 곧바로 덧붙입니다.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열왕기하 25:21).

그러나 스라야의 이야기는 리블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족보는 그의 아들 여호사닥이 사로잡혀 갔고(역대상 6:14-15), 그의 손자 여호수아가 귀환 후 대제사장이 되었으며, 학사 에스라가 그의 후손이었다고 기록합니다(에스라 7:1). 심판 아래서 죽은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회복 속에서 섬길 한 혈통을 보존하셨습니다.

1. 이름의 어원과 의미

히브리어 이름 스라야(שְׂרָיָה, 세라야, 세라야후라고도 씀)는 동사 요소와 하나님의 이름 YHWH의 줄임꼴 야가 결합된 것입니다. 뜻은 완전히 확실하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은 이 이름을 ‘겨루다, 끈질기게 버티다’라는 뜻의 동사 사라와 연결하는데, 이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설명할 때 쓰인 어근과 같습니다(창세기 32:28).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겨루셨다’ 또는 ‘여호와께서 끝까지 버티신다’는 뜻이 됩니다. 다른 이들은 ‘왕자, 통치자’를 뜻하는 사르와 연결하여 ‘여호와는 왕이시다’ 또는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로 봅니다. 두 제안 모두 가능하며, 이 문제는 열어 두는 것이 정직합니다.

이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흔했고, 구약의 여러 사람이 이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 스라야를 그의 직분인 ‘대제사장’(코헨 하로쉬)과 제사장 족보 안의 위치로 구별합니다.

2. 역사적 배경과 성경 이야기

2.1 가문과 족보

스라야는 엘르아살과 사독을 거쳐 내려온 아론의 제사장 계보에 속했습니다. 역대상 6:1-15(히브리어 성경 5:27-41)의 명단은 이 계보를 그에게까지 이어 갑니다. ‘살룸은 힐기야를 낳고 힐기야는 아사랴를 낳고 아사랴는 스라야를 낳고 스라야는 여호사닥을 낳았으며’(역대상 6:13-14). 같은 순서가 에스라의 족보에도 나옵니다(에스라 7:1-5). 성경의 족보는 때때로 몇 세대를 건너뛰지만, 현재 명단대로라면 스라야는 요시야 왕 때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한 대제사장 힐기야의 손자입니다(열왕기하 22:8).

그의 아들 여호사닥은 여호와께서 느부갓네살의 손으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을 옮기실 때에 사로잡혀 갔습니다(역대상 6:15).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예수아라고도 함)는 바벨론에서 돌아와 스룹바벨과 함께 대제사장으로 섬겼습니다(에스라 3:2; 학개 1:1; 스가랴 3:1). 몇 세대 뒤에 예루살렘에 온 에스라는 ‘스라야의 아들’이라고 불립니다(에스라 7:1).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 제칠년에 왔으므로(에스라 7:7-8) 스라야가 죽은 지 한 세기가 훨씬 넘은 때였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아들’은 히브리 족보에서 흔히 그렇듯 후손을 뜻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 몇 세대가 있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이 스라야를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들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의 서기관(사무엘하 8:17), 바룩과 예레미야를 잡으라는 명령을 받은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예레미야 36:26), 바벨론에 대한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가지고 간 병참감 네리야의 아들 스라야(예레미야 51:59-64)가 그들입니다.

2.2 주요 사건

성경은 예루살렘의 마지막 날들 이전의 스라야의 사역에 대해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는 바벨론을 배반한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통치 때에 섬겼습니다(열왕기하 24:20). 느부갓네살이 성을 포위하자 기근이 심해졌고, 성벽이 뚫렸으며, 시드기야는 사로잡혀 리블라로 끌려가 아들들이 죽임당하는 것을 보고 두 눈이 뽑혔습니다(열왕기하 25:1-7).

한 달 뒤 느부사라단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집들을 불사르고 성벽을 헐었습니다(열왕기하 25:8-10). 성전의 놋 기둥과 놋 기구들은 옮겨졌습니다(열왕기하 25:13-17). 그 뒤 느부사라단은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았고, 군사를 거느린 관리 한 사람, 왕의 시종 몇 사람, 백성을 징집하는 장관의 서기관, 그리고 그 땅 백성 육십 명도 함께 잡았습니다(열왕기하 25:18-19; 예레미야 52:24-25는 시종이 다섯이 아니라 일곱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들을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 끌고 갔고, 바벨론 왕은 하맛 땅 리블라에서 그들을 쳐 죽였습니다(열왕기하 25:20-21; 예레미야 52:26-27).

본문은 왜 하필 이 사람들이 처형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느부갓네살이 반역한 성의 종교적, 정치적, 군사적 지도층을 제거했다는 것이지만, 이는 명단에서 끌어낸 추론이지 이야기 자체의 진술은 아닙니다.

3. 성품과 성경 이야기 속 역할

성경은 스라야 개인의 신앙이나 행실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가 예레미야를 지지했는지 반대했는지 알지 못하며, 어느 쪽의 모습도 지어내서는 안 됩니다. 그 시대의 선지자들은 제사장들을 집단으로 책망했고(예레미야 6:13; 예레미야 23:11), 역대기 기자는 그 시대를 요약하여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들과 백성이 크게 범죄하여 여호와의 전을 더럽혔다고 말합니다(역대하 36:14).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판단일 뿐, 본문은 스라야가 어떤 특정한 죄를 지었다고 지목하지 않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그의 역할은 대표적입니다. 대제사장으로서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집에서 이스라엘 예배의 맨 앞에 서 있었습니다. 성전이 불탄 직후 그가 체포되어 처형된 것은, 선지자들이 선포한 심판이 이스라엘 종교 생활의 한복판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야 했던 제사장은 재앙을 막지 못했고, 그 자신도 그 재앙 아래 쓰러졌습니다.

4. 신학적 의미

4.1 성소에서 시작되는 심판

예루살렘의 함락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선지자들은 그것을 우상 숭배와 불의를 고집한 언약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했습니다(열왕기하 24:3-4; 역대하 36:15-16). 에스겔의 환상에서는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는 명령이 주어지고(에스겔 9:6), 예레미야애가는 주께서 진노 중에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다고 말합니다(예레미야애가 2:6). 리블라에서 대제사장이 죽은 일은 이 진리를 엄숙하게 보여 주며, 신약도 같은 진리를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습니다(베드로전서 4:17).

4.2 계속 있을 수 없었던 제사장들

히브리서는 레위 계열의 제사장들이 죽음 때문에 항상 있지 못하여 그 수가 많았다고 말합니다(히브리서 7:23). 스라야는 그 특별히 생생한 예입니다. 그의 직무는 이방 왕의 칼에 끊어졌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며,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위하여 항상 살아서 간구하십니다(히브리서 7:24-25). 스라야의 최후는 어떤 지상의 제사장도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보장할 수 없었으며, 오직 영원한 대제사장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음을 일깨웁니다.

4.3 심판 너머의 신실하심

스라야의 혈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후손 여호수아는 재건된 성전에서 대제사장으로 섬겼고, 스가랴의 환상에서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라 불리며 주께서 깨끗하게 하시고 정결한 옷을 입히셨습니다(스가랴 3:1-5). 후에 여호수아의 머리에 면류관이 씌워졌는데, 이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자기 왕좌에서 제사장이 될 오실 ‘싹’을 가리키는 표징이었습니다(스가랴 6:11-13). 또 다른 후손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 부흥을 이끌었습니다(에스라 7:10; 느헤미야 8:1-8). 심판은 실제였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5. 유산과 정경 속 언급

대제사장 스라야는 네 본문에서 언급됩니다. 열왕기하 25:18-21은 느부사라단에 의한 그의 체포와 리블라에서의 죽음을 기록합니다. 예레미야 52:24-27은 처형된 사람들의 명단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평행 기록입니다. 역대상 6:14(히브리어 성경 5:40)는 그를 대제사장 족보 안에 아사랴의 아들이자 여호사닥의 아버지로 둡니다. 에스라 7:1은 그를 에스라의 조상으로 부릅니다.

포로 귀환 후 예루살렘에 거주한 사람들의 명단에는 하나님의 전을 맡은 ‘힐기야의 아들 스라야’라는 제사장이 나옵니다(느헤미야 11:11). 이름들이 같은 가문의 계보를 따르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이 가문의 이름을 이어받은 후대의 제사장이나 그에게서 나온 제사장 가문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역대상 9:11의 평행 명단은 그 자리에 아사랴를 둡니다. 우리가 다루는 스라야와의 관계는 불확실하므로 무리하게 연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그의 유산은 이중적입니다. 그는 예루살렘과 함께 쓰러진 대제사장으로 기억되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예배와 가르침을 다시 세우시는 데 사용하신 제사장들과 한 학사의 조상으로 기억됩니다.

6. 오늘을 위한 적용

첫째, 스라야의 이야기는 종교적 지위가 공동체의 불신실함이 가져오는 결과로부터 사람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직분을 맡거나, 교회에 속하거나, 존경받는 이름을 가진 것이 살아 있고 순종하는 믿음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둘째, 그의 죽음은 우리의 눈을 그리스도께로 돌립니다. 모든 인간 중보자는 결국 실패하거나 죽거나 제거됩니다. 신자의 소망은 빼앗길 수 없는 대제사장께 있습니다. 그분은 자기 피로 참 성소에 들어가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히브리서 9:11-12).

셋째, 스라야의 혈통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상실을 겪는 사람들을 격려합니다. 여호사닥은 리블라에서 죽임당한 아버지의 기억을 안고 포로로 끌려갔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가문에서 여호수아를, 그리고 나중에 에스라를 일으키셨습니다. 폐허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일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회복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로마서 8:28).

마지막으로, 우리는 영적 지도자들과 우리 자신을 위해, 시련의 날이 오기 전에 신실한 자로 발견되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유익하게 하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징계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히브리서 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