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
갑옷은 고대 군사의 몸을 보호하는 무장으로, 가슴과 등, 흔히 팔 윗부분까지 가렸다. 히브리어로는 시르욘(shiryon)이며 시르욘, 시르얀으로도 쓴다. 개역개정은 이를 주로 갑옷으로 옮기고, 신약에서는 호심경이라는 말도 쓴다. 많은 독자가 쇠고리를 엮은 사슬 갑옷을 떠올리지만, 구약 시대의 갑옷은 보통 작은 놋이나 쇠 비늘을 가죽이나 천으로 된 옷 위에 겹겹이 줄지어 꿰매어 만들었다. 골리앗의 갑옷이 바로 그렇게 묘사된다. 그는 비늘 갑옷을 입었는데 그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었다(사무엘상 17:5).
성경은 이 갑옷을 전쟁 이야기, 왕의 장비 목록, 선지자의 예언에서 언급하지만, 가장 오래 남은 용법은 비유이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친히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신다고 묘사하고(이사야 59:17), 바울은 신자들에게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고(에베소서 6:14),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라고(데살로니가전서 5:8) 권한다. 군사 장비로 시작된 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보호의 형상이 되었다.
1. 어원과 의미
히브리어 시르욘은 고대 근동에 널리 퍼진 차용어이다. 관련된 형태가 아카드어(sariam, siriam), 우가릿 문헌, 그리고 병사와 전차 말에게까지 지급된 비늘 갑옷을 열거하는 후리아 문서에 나타난다. 단어의 기원은 불확실하며, 아마 그 기술과 함께 히브리어에 들어왔을 것이다. 사무엘상 17:5에서는 물고기 비늘을 가리키는 말인 카스카심(레위기 11:9)이 덧붙어 있어, 골리앗 갑옷의 구조를 확인해 준다.
다른 모호한 단어 타흐라는 대제사장 겉옷의 묘사에 나온다. 겉옷의 머리 들어갈 구멍 둘레를 타흐라의 구멍처럼 짜서 찢어지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출애굽기 28:32; 39:23). 옛 번역들은 이를 일종의 사슬 갑옷으로 이해했지만 뜻은 확실하지 않다.
구약의 헬라어 번역은 대개 시르욘을 토락스(thōrax)로 옮기는데, 본래 가슴을 뜻하고 나중에는 가슴을 덮는 갑옷을 뜻하게 되었다. 사무엘상 17:5에서는 고리로 엮은 토락스라고까지 말하는데, 이는 번역자들 시대에 알려진 갑옷을 반영한다. 신약은 토락스를 의와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에베소서 6:14; 데살로니가전서 5:8), 그리고 요한계시록 황충의 철 호심경(요한계시록 9:9, 17)에 사용한다.
2. 역사적 배경과 성경적 용례
제작과 비용
비늘 갑옷은 값비쌌다. 비늘 하나하나를 두드리고 구멍을 내고 꿰매야 했으며, 온전한 갑옷 한 벌에는 수백 개의 조각이 필요했다. 이 지역 여러 유적에서 놋과 쇠로 된 비늘이 발견되었고, 누지 문서(주전 15세기)는 병사들에게 지급된 비늘 갑옷을 기록한다. 이집트와 앗수르의 부조에는 긴 비늘 갑옷을 입은 궁수와 전차병이 나온다. 고리를 엮은 사슬 갑옷은 훨씬 뒤에 등장하므로, 구약 시대 군사가 그것을 입었을 가능성은 낮다. 비용 때문에 온전한 갑옷은 대개 왕, 장수, 지휘관, 정예병의 몫이었고, 일반 병사는 방패와 무기 정도만 가지고 싸웠다.
골리앗과 사울
블레셋의 장수는 놋 투구를 쓰고, 오천 세겔(약 55에서 60킬로그램) 무게의 비늘 갑옷을 입고, 다리에는 놋 각반을 치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고 나왔다(사무엘상 17:5-7). 이 세부 묘사는 위압감을 주려는 것이다. 그는 누구도 이길 수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키가 크고 왕이었던 사울도 갑옷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씌우고 갑옷을 입혔다(사무엘상 17:38). 다윗은 걸어 보고는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다며 벗었다(사무엘상 17:39).
왕과 군대
아합 왕은 변장하고 전쟁에 나갔으나,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혔고, 그는 미가야가 예언한 대로 저녁에 죽었다(열왕기상 22:34-37; 역대하 18:33). 웃시야는 온 군대를 위해 방패와 창과 투구와 갑옷과 활과 물매 돌을 준비했는데(역대하 26:14), 이는 번영하는 통치의 표시였다. 느헤미야가 위협 가운데 성벽을 쌓을 때, 그의 종자들 절반은 일하고 나머지 절반은 창과 방패와 활과 갑옷을 갖추었다(느헤미야 4:16).
선지서에서
예레미야는 갈그미스 전투를 앞둔 애굽 군대를 이렇게 묘사한다. 말에 마구를 채우고 투구를 쓰고 서며 창을 갈고 갑옷을 입으라(예레미야 46:4). 이 명령은 반어적이다. 같은 장은 그날이 주 만군의 여호와의 날, 곧 원수를 갚는 날이라고 선포한다(예레미야 46:10). 바벨론을 향해서 선지자는 활 쏘는 자가 활을 당기지 못하게 하며 갑옷을 입고 일어서지 못하게 하라고 말한다(예레미야 51:3).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장비도 여호와께서 심판하기로 작정하신 나라를 보호하지 못한다.
3. 주요 본문
사무엘상 17장은 두 종류의 신뢰를 대조한다. 골리앗은 자기 놋을 의지하고, 사울도 다윗에게 같은 종류의 보호를 내민다. 다윗은 시험해 보지 않은 갑옷을 거절하고 물매와 돌 다섯 개를 가지고 나가며 말한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사무엘상 17:45). 그리고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니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덧붙인다(사무엘상 17:47). 돌은 이마에 박혔는데, 그곳은 갑옷이 가리지 않은 유일한 자리였다(사무엘상 17:49).
열왕기상 22:34는 그 반대의 그림이다. 아합은 변장, 갑옷, 병거 등 모든 대비를 했다. 그러나 무심코 쏜 화살이 솔기를 찾아냈는데, 이는 미가야를 통한 여호와의 말씀이 이미 선포되었기 때문이다(열왕기상 22:17, 28).
이사야 59:15-17은 이 형상을 하나님의 영역으로 옮긴다. 여호와께서 정의가 없고 중재자가 없음을 보시고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셨다.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셨다. 신적 용사는 갑옷을 빌려 입지 않으신다. 그분의 갑옷은 그분 자신의 성품이다.
에베소서 6:10-18과 데살로니가전서 5:8은 이 형상을 교회에 적용한다. 신자는 주 안에서 강건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진리로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굳게 서야 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쓴다.
4. 신학적 의미
갑옷은 인간의 힘이 가장 좋을 때의 모습, 곧 기술과 부와 준비를 나타낸다. 성경은 그 사용을 정죄하지 않는다. 느헤미야의 일꾼들은 본문의 인정 아래 갑옷을 입었다. 그러나 성경 이야기들은 거듭 그 한계를 보여 준다. 골리앗은 목동 앞에서, 아합은 빗나간 화살 앞에서, 애굽과 바벨론은 하나님의 작정 앞에서 무너졌다. 여호와께로부터 오지 않은 보호는 결코 최종적이지 않다.
선지자의 형상은 독자를 사람의 갑옷에서 하나님의 갑옷으로 이끈다. 이사야서에서 공의와 구원을 입으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며, 선지자는 이미 이새의 줄기에서 날 싹에 대해 공의가 그의 허리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사야 11:5). 바울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말할 때 이 언어를 빌려 온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보호를 스스로 만들지 않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 자신을 입는다.
에베소서 6:14의 의의 호심경에 대해서는 해석자들의 견해가 갈린다.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신자에게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가 원수의 참소로부터 마음을 지킨다고 보고, 다른 이들은 삶의 실제적인 정직을 본다. 두 해석은 서로 배척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의는 의로운 삶을 낳으며, 둘 다 신자를 보호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8에서 호심경은 믿음과 사랑이니, 하나님을 신뢰함과 이웃을 사랑함 자체가 방어의 무기임을 보여 준다.
5. 유산과 정경 속 참고 구절
갑옷은 요한계시록에서 다시 나타난다. 귀신적인 황충들은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을 가졌고, 여섯째 나팔의 기병들은 불빛과 자줏빛과 유황빛 호심경을 가졌다(요한계시록 9:9, 17). 이는 무섭고 무적처럼 보이는 세력의 형상이지만, 그 세력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계 안에서만 움직인다. 바울의 관련 표현으로는 빛의 갑옷(로마서 13:12), 좌우에 있는 의의 무기(고린도후서 6:7),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 앞에서 강력한 무기(고린도후서 10:4)가 있다. 그 뒤로 기독교 찬송과 경건 문학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라는 형상을 계속 사용해 왔다.
6. 오늘을 위한 적용
골리앗처럼 우리도 눈에 보이는 보호, 곧 돈과 평판과 계획과 건강을 의지하고 싶어 한다. 이것들이 악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것도 마음을 지키지 못한다. 다윗처럼 시험해 보지 않은 갑옷은 내려놓고, 전쟁이 여호와께 속했음을 믿으며 그분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것이 지혜롭다.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호심경을 붙이도록 부름받았다. 양심이 참소당할 때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쉬고, 원수가 열린 솔기를 찾지 못하도록 정직하게 행하며, 믿음과 사랑으로 옷 입는 것이다. 우리를 보호하는 갑옷은 아무도 구원할 수 없을 때 친히 구원하러 오신 주님께서 먼저 입으신 것이며, 그 안에 있는 자들을 결코 저버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