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달랴
아달랴는 유다 왕국을 단독 군주로 다스린 유일한 여인입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의 딸인 그녀는 경건한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결혼했고, 아버지의 궁정을 특징짓던 바알 숭배를 다윗의 집에 들여왔습니다. 아들 아하시야가 죽임을 당하자 그녀는 왕위를 빼앗고 왕의 씨를 모두 진멸하려 했습니다. 그녀가 예루살렘에서 육 년 동안 다스리는 동안, 다윗 가문의 단 한 아기가 성전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8:16-11:20과 역대하 21:1-23:21에 기록된 그녀의 이야기는 구약에서 가장 극적인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이야기는 타협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 다윗의 계보가 얼마나 위태로워 보였는지, 그리고 다윗의 왕위에 앉을 후손이 끊어지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게 지키셨는지를 보여 줍니다.
성경에는 아달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도 두 명 잠깐 언급됩니다. 한 사람은 베냐민 사람이고(역대상 8:26), 다른 한 사람은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여사야의 아버지입니다(에스라 8:7). 이들을 왕비와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1. 어원과 의미
히브리어 이름은 아탈야후(עֲתַלְיָהוּ), 짧은 형태로는 아탈야(עֲתַלְיָה)입니다. 어미 -야 또는 -야후는 하나님의 이름 야훼(여호와)의 줄임꼴입니다. 앞부분은 덜 확실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높임을 받다 또는 크다는 뜻의 어근과 연결하여 여호와는 높으시다라는 뜻으로 보지만, 이 설명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높이는 이름을 지녔다는 점이며, 이것이 그녀의 바알 숭배를 더욱 역설적으로 만듭니다. 아합 자신도 바알 숭배를 장려하면서 자녀들에게는 여호와의 이름이 들어간 이름(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여호람)을 지어 주었습니다.
2. 역사적 배경과 성경의 용례
정략결혼
주전 9세기에 오므리 왕조가 다스리던 북왕국 이스라엘은 부유하고 강했고, 유다는 그보다 작았습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은 아합과 혼인하여 인척이 되었고(역대하 18:1), 그 결과 그의 아들 여호람이 아달랴와 결혼했습니다. 성경은 그녀를 아합의 딸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열왕기하 8:18; 역대하 21:6) 오므리의 손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열왕기하 8:26; 역대하 22:2, 원어로는 오므리의 딸). 히브리어의 딸이라는 말은 여자 후손을 뜻할 수도 있으므로, 대부분의 해석자는 그녀를 아합의 딸이며 오므리의 손녀로 봅니다. 성경은 이세벨이 그녀의 어머니라고 명시하지 않지만 많은 이들이 그렇게 추정하며, 그녀의 행실은 이세벨과 매우 닮았습니다.
왕의 아내이자 왕의 어머니
유다 왕 여호람은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걸어 아합의 집과 같이 행했는데,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열왕기하 8:18). 그는 왕이 되자 자기 아우들을 모두 죽였습니다(역대하 21:4). 후에 그의 아들들은 침략 때에 끌려가거나 죽임을 당했고, 막내 아하시야만 남았습니다(역대하 21:16-17; 22:1). 아하시야는 일 년만 다스렸고 그의 어머니는 아달랴였습니다(열왕기하 8:26). 역대기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다고 덧붙입니다(역대하 22:3). 아하시야는 아합의 집에 대한 예후의 반란 때에 죽임을 당했고(열왕기하 9:27), 아하시야의 친척 여럿도 같은 때에 죽었습니다(열왕기하 10:13-14).
왕위 찬탈
아달랴는 자기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씨를 모두 진멸했습니다(열왕기하 11:1). 그녀의 동기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아마 북쪽에서 자기 가문이 무너진 뒤 권력을 확보하려 했을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녀는 자기 손자들까지 죽일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람 왕의 딸이자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죽임을 당하는 왕자들 가운데서 몰래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겼습니다(열왕기하 11:2). 역대기는 그녀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였다고 덧붙입니다(역대하 22:11). 아이는 여호와의 성전에 육 년 동안 숨어 있었고, 그동안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습니다(열왕기하 11:3). 대략 주전 841년에서 835년 무렵으로 보지만 정확한 연대는 논란이 있습니다.
아달랴의 몰락
일곱째 해에 여호야다는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을 불러 언약을 맺고 왕자를 보인 뒤, 성전과 아이 주위에 경비를 배치했습니다(열왕기하 11:4-8). 그는 성전에 있던 다윗 왕의 창과 방패를 백부장들에게 주었습니다(열왕기하 11:10). 그리고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니, 무리가 박수하며 왕이여 만세 하고 외쳤습니다(열왕기하 11:12).
그 소리를 들은 아달랴가 성전에 와서 보니, 왕이 규례대로 단 위에 섰고 나팔수들과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아달랴는 옷을 찢으며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하고 외쳤습니다(열왕기하 11:13-14). 여호야다는 그녀를 여호와의 성전에서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고, 무리가 그녀를 끌어내어 왕궁의 말이 다니는 길에서 죽였습니다(열왕기하 11:15-16; 역대하 23:15). 이어 여호야다는 왕과 백성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는 언약을 여호와와 왕과 백성 사이에 세웠습니다. 백성은 바알의 신당을 허물고 제단들과 형상들을 깨뜨리고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제단 앞에서 죽였습니다(열왕기하 11:17-18).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했습니다(열왕기하 11:20). 요아스가 왕이 될 때 나이는 일곱 살이었습니다(열왕기하 11:21).
3. 주요 본문
열왕기하 8:16-27과 역대하 21:4-22:4은 아달랴의 영향이 남편과 아들의 통치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보여 줍니다. 그들이 아합의 집을 따랐다는 반복되는 언급은, 정략결혼이 유다에게 영적 재앙이 되었음을 드러냅니다.
열왕기하 8:19은 전체 이야기의 열쇠를 줍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아달랴가 권력을 잡기 직전에 놓여 있어, 마치 독자에게 결말을 미리 안심시키는 듯합니다.
열왕기하 11:1-3과 역대하 22:10-12은 학살과 구출을 이야기합니다. 한 아이를 위해 목숨을 건 왕실 여인 여호세바의 용기는, 자기 야망을 위해 자기 후손을 희생시킨 왕비 아달랴의 잔인함과 선명하게 대조됩니다.
열왕기하 11:4-20과 역대하 23:1-21은 회복을 이야기합니다. 역대기는 레위인의 역할과 예배의 질서와 백성의 기쁨을 강조하고, 열왕기는 군사적 계획에 초점을 둡니다. 두 기록 모두 정치적일 뿐 아니라 영적인 갱신을 보여 줍니다. 언약이 새로워지고 바알의 신당이 무너집니다.
역대하 24:7은 마지막 평가를 내리며, 그 악한 여인 아달랴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전을 파괴하고 여호와의 전의 모든 성물을 바알들을 위하여 사용했다고 말합니다.
4. 신학적 의미
아달랴의 이야기는 무엇보다 다윗과 맺으신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집과 나라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사무엘하 7:12-16). 아달랴 치하에서 그 약속은 인간적으로 보면 숨겨진 한 아기의 생명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다윗의 등불을 보존하셨습니다(열왕기하 8:19; 열왕기상 11:36 참조). 거의 꺼질 뻔했던 그 계보는 다윗의 자손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이어졌습니다(마태복음 1:1).
이 이야기는 또한 타협의 파괴력을 보여 줍니다. 여호사밧은 신실한 왕이었지만, 아합과의 동맹은 아합의 집을 다윗의 집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한 세대 만에 유다의 왕가는 거의 멸절되었고, 바알 숭배가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동맹을 거듭 경고합니다(역대하 19:2; 고린도후서 6:14).
아달랴의 통치는 또한 권력욕의 자기 파괴적 본질을 보여 줍니다. 왕위를 지키려고 손자들을 죽인 왕비는 모든 것을 잃었고, 반역이라는 그녀의 외침은 스스로 반역으로 권력을 잡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엘리야가 선포한 아합의 집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열왕기상 21:21-24)은 유다에 있던 그 집의 마지막 사람에게까지 이르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는 평범한 종들의 조용한 신실함을 부각시킵니다. 여호세바와 여호야다는 처음부터 군대를 지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한 아이를 숨기고, 육 년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들의 용기가 메시아의 계보를 지켰습니다. 많은 독자들은 시기하는 왕이 다윗 가문의 아기를 죽이려 하지만 그 아기가 보호받는 복음서의 이야기와 평행을 발견합니다(마태복음 2:13-16). 성경이 이 연결을 명시하지는 않지만, 두 이야기는 같은 패턴을 보여 줍니다. 인간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없습니다.
5. 유산과 정경적 연관
아달랴는 열왕기하 8:26, 11:1-20, 역대하 22:2, 10-12, 23:12-15, 21, 24:7에 언급됩니다. 열왕기는 유다 왕들에게 쓰는 통상적인 즉위와 종결 양식을 그녀에게 적용하지 않는데, 많은 해석자들은 이 침묵을 그녀의 통치가 결코 정통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표시로 봅니다. 마태복음 1:8의 예수님 족보는 요람에서 곧바로 웃시야로 넘어가며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를 생략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생략이 이 왕들이 아합의 집에서 났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보지만, 이는 가설일 뿐이며 마태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죽이려 했던 아이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지만(열왕기하 12:2), 제사장이 죽은 뒤에는 떠나갔습니다(역대하 24:17-22). 성경 밖에서 아달랴는 장 라신의 비극 아탈리(Athalie, 1691)와 헨델의 오라토리오 아탈리아(Athalia, 1733)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많은 독자들은 그녀를 이세벨과도 비교하는데, 이세벨의 이름은 요한계시록 2:20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우상 숭배로 이끄는 거짓 가르침의 상징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6. 오늘을 위한 적용
아달랴의 이야기는 작은 양보가 큰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여호사밧은 아합과의 동맹을 현명한 정치라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자기 가정 안에 우상 숭배와 폭력의 문을 열었습니다. 오늘의 신자들은 우정과 협력 관계와 약속들을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의 빛 아래에서 따져 보아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권력욕의 속마음도 드러냅니다. 아달랴는 왕위를 지키기 위해 자기 가족을 파멸시킬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충동이 더 작은 모습으로, 우리가 자신의 지위나 이미지나 통제력을 지키려고 사람들을 이용할 때마다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의 길은 정반대입니다. 왕이셨던 그분은 섬기는 자가 되셔서 다른 이들을 위해 목숨을 주셨습니다(마가복음 10:42-45).
무엇보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뜻이 실낱에 매달린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격려합니다. 육 년 동안은 바알이 이기고 다윗의 집이 끝난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의 숨겨진 방에서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교회가 약해 보이고 악이 이기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이루실 길이 결코 없지 않으시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여호세바와 여호야다처럼, 우리는 귀한 것을 지키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신실하고 인내하는 용기로 부름받았습니다. 다윗의 보좌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차지하셨고, 어떤 찬탈자도 그분의 나라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누가복음 1:3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