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레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에 있던 번성한 헬라 도시로, 지금도 키레나이카라고 불리는 지역, 곧 오늘날 리비아 동부에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은 이 도시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지만, 신약성경에서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등장합니다. 구레네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고, 구레네 출신 유대인들이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으며, 구레네 사람들이 스데반과 논쟁했고, 구레네 출신 신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헬라인에게 주 예수를 전한 사람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도시는 그 자체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닙니다. 1세기에 유대인의 흩어짐이 얼마나 멀리 퍼져 있었는지, 그리고 로마 세계의 변방에서 온 평범한 신자들을 통해 복음이 어떻게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경계를 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인 기르(열왕기하 16:9; 아모스 9:7)와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라틴어 불가타역은 이곳을 때때로 '구레네'로 번역했습니다. 또한 시리아 총독 구레뇨(누가복음 2:2)와도 다른 이름입니다.
1. 어원과 의미
헬라어 이름은 퀴레네(Κυρήνη)이며, 주민은 퀴레나이오스(Κυρηναῖος), 곧 '구레네 사람'이라고 불렸습니다. 히브리어 단어가 아니며, 기원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 전승은 이 이름을 아폴론에게 바쳐진 퀴레라는 샘과 연결했는데, 도시가 그 샘 곁에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또는 신화에서 아폴론이 사랑한 님프 퀴레네와 연결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그리스 이주민들이 받아들인 현지 리비아어 단어에서 왔다고 봅니다. 어느 설명도 확인할 수 없으므로, 뜻이 분명하지 않은 지명으로 다루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2. 역사적 배경과 성경적 용례
위치와 초기 역사
구레네는 해발 약 600미터의 석회암 고원 위, 지중해에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고, 아폴로니아에 자체 항구가 있었습니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 도시는 주전 630년경 테라 섬에서 온 이주민들이 바토스라는 사람의 인도로 세웠습니다. 비옥한 고지대 덕분에 곡물과 말, 그리고 지금은 멸종된 약용 식물 실피움으로 부유해졌습니다. 구레네는 헬라 세계의 큰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펜타폴리스라 불린 다섯 도시 연합의 중심이었으며, 철학자 아리스티포스, 시인 칼리마코스, 지리학자 에라토스테네스 같은 사상가들의 고향이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로마의 통치
알렉산더 대왕 이후 구레네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주전 96년 이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가 유언으로 구레네를 로마에 넘겨주었고, 후에 구레네는 로마의 속주가 되어 행정적으로 그레데와 합쳐졌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구레네는 바다로 알렉산드리아, 그레데, 로마와 연결된 번영하는 지방 도시였습니다.
유대인 공동체
유대인들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 때 키레나이카에 정착했고, 공동체는 크게 성장했습니다. 요세푸스가 인용한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구레네 주민이 네 부류로 이루어졌으며 그중 하나가 유대인이었다고 말합니다. 구레네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절기마다 예루살렘에 올라갔고, 일부는 그곳에 정착하여 자기들의 회당을 두었습니다(사도행전 6:9). 개신교 정경 밖의 책인 마카베오하의 저자는 자기 책이 구레네 사람 야손이 쓴 더 긴 저작을 요약한 것이라고 말하는데(마카베오하 2:23), 이 역시 그곳에 교양 있는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 공동체는 주후 115-117년의 대규모 유대인 반란 때 파괴되었습니다. 오늘날 샤하트 근처에 있는 도시 유적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3. 주요 본문
마태복음 27:32, 마가복음 15:21, 누가복음 23:26은 군인들이 시골에서 오던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을 붙들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한 일을 전합니다. 마태와 마가가 쓴 동사 앙가레우오는 로마 당국이 강제로 부역을 시키는 것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마태복음 5:41)라고 하실 때 쓰신 바로 그 동사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가셨다고 기록하는데(요한복음 19:17), 이는 채찍질로 쇠약해진 예수님이 더 이상 십자가를 지실 수 없게 되었을 때 시몬이 징발되었음을 암시합니다. 누가는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게' 했다고 덧붙이는데, 이는 제자도의 그림입니다(누가복음 9:23). 마가만 그를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소개하는데, 이는 그 아들들이 마가복음의 독자들에게 알려진 사람들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루포에게 문안하는데(로마서 16:13), 많은 이들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추측으로 남아 있습니다. 1941년 기드론 골짜기에서 발견된 무덤 동굴에는 키레나이카 출신으로 보이는 한 가족의 유골함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에 '시몬의 아들 알렉산더'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마가복음과 연결하고 싶어지지만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무리 가운데는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서 온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사도행전 2:10). 그들 가운데 일부는 그날 믿은 삼천 명 속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얼마 후 이른바 리버디노 회당과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의 회당에 속한 사람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논쟁했지만, 그가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것을 당해 낼 수 없었습니다(사도행전 6:9-10). 스데반의 죽음 뒤에 일어난 박해로 신자들은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전환점 가운데 하나가 찾아옵니다. 흩어진 사람들 대부분은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했지만,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 몇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시매 수많은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사도행전 11:19-21). 이 이름 없는 구레네 사람들은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교회를 세우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사도행전 11:26). 나중에 그 교회의 선지자와 교사들 가운데 '구레네 사람 루기오'가 등장하는데(사도행전 13:1), 그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 바나바와 사울을 첫 선교 여행에 보낸 지도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같은 절에 나오는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없습니다.
4. 신학적 의미
구레네는 복음 이야기의 양 끝에 등장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먼 아프리카에서 온 한 사람이 문자 그대로 구주의 짐을 함께 지도록 강요받습니다. 부활 이후에는 같은 도시 출신 사람들이 그 십자가의 메시지를 열방에 전합니다. 누가는 이 흐름을 소중히 여기는 듯합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약속대로 예루살렘에서 바깥으로 퍼져 나가며(사도행전 1:8), 흔히 사도들이 아니라 변방에서 온 이름 없는 신자들을 통해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는 또한 교회가 처음부터 여러 민족과 지역의 사람들을 품었음을 보여 줍니다. 오순절에는 바대에서 리비야에 이르는 지역의 유대인들이 모였는데(사도행전 2:9-11), 이는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창세기 12:3)이 성취되기 시작했다는 표입니다. 공식 계획을 기다리지 않고 이방인에게로 경계를 넘은 안디옥의 구레네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없다는 확신(갈라디아서 3:28)을 몸으로 보여 줍니다.
5. 유산과 정경적 연결
구레네라는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위에 언급한 본문에만 나옵니다. 마태복음 27:32, 마가복음 15:21, 누가복음 23:26, 사도행전 2:10, 6:9, 11:20, 13:1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이 도시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일부 해석자들은 붓이나 루빔(리비아 사람들)을 이 넓은 지역과 연결하지만, 그 본문들은 리비아 전반을 가리키지 구레네를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기독교는 일찍부터 키레나이카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4세기에는 이 지역에 이미 감독들이 있었고, 기독교 철학자이자 감독인 구레네의 시네시오스(주후 370-413년경)가 그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도시 자체는 지진과 7세기 아랍의 정복 이후 쇠퇴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그리스도인의 상상 속에서 강렬한 인물로 남아 있으며, 특히 아프리카 신자들은 그를 통해 아프리카가 골고다에 함께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6. 오늘을 위한 적용
시몬은 십자가를 지기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가 그에게 지워졌습니다. 그러나 마가가 그의 아들들을 언급한 것은 그 만남이 그의 가정을 바꾸었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은 원치 않는 방해조차 사용하셔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가까이 이끄실 수 있습니다. 강제 노역처럼 보였던 일이 구주와 가까워지는 자리가 되었고, 모든 제자에게 주어진 부르심도 같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누가복음 9:23).
안디옥에서 헬라인에게 말한 구레네 출신 신자들은, 복음이 대개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그저 주 예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전진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모르지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신실한 증언은 명성이나 지위가 아니라 좋은 소식을 들고 경계를 넘으려는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