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셨나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이 외침은 버림받음의 진짜 고통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단순한 두려움이나 절망의 언어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과 마가복음 15장 34절이 기록하는 이 말씀은 히브리어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Eli, Eli, lama sabachthani)라 하였는데, 이는 시편 22편 1절의 직접 인용입니다. 이 짧은 외침 안에 온 인류의 구원이 담겨 있습니다.
시편 22편의 성취
예수님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담으셨습니다. 시 22편은 다윗이 극한의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드린 기도인데, 그 묘사가 십자가형과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손과 발이 찔리고(시 22:16), 옷을 제비 뽑아 나누며(시 22:18), 뼈들이 다 어그러집니다(시 22:14). 예수님이 이 첫 구절을 인용하셨을 때, 유대 청중은 시편 전체를 불러냈습니다. 그 시는 탄식으로 시작하지만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시 22:23)라는 찬양으로 마칩니다. 예수님의 외침은 절망의 마침표가 아니라, 성취를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의 첫 소절이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 외침이 신학적으로 무거운 이유는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었습니다(히 4:15). 그럼에도 그분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사 53:6). 고린도후서 5장 21절은 이를 아름답게 압축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죄의 결과는 하나님과의 분리입니다. 예수님은 그 분리를 온몸으로 겪으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핵심입니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깊은, 아버지와의 관계적 단절이라는 심판을 그분이 우리 대신 감당하셨습니다.
삼위일체가 깨진 것인가 — 흔한 오해들
여기서 많은 이들이 혼란스러워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로 분리될 수 있는가? 성자가 성부에게 진짜로 버림받은 것인가? 이 질문들은 진지하게 다뤄야 합니다. 삼위일체의 존재론적 연합은 영원히 깨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단일한 존재이시고, 성부·성자·성령은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그러나 관계적이고 경험적인 차원에서 예수님은 죄의 형벌이 가져오는 하나님과의 분리를 실제로 체험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분이 단지 연기를 한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은 예수님이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 고통은 진짜였습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진노가 예수님 위에 쏟아진 사건으로, 또 다른 이들은 관계적 어둠의 절정으로 설명합니다. 두 관점 모두 같은 진리를 다른 언어로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를 완전히 짊어지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외면하셨는가
또 하나의 오해는, 아버지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아들을 냉정히 외면하셨다는 그림입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5장 19절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아버지는 아들의 고통 바깥에 계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셨습니다. 이 역설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붙드는 것이 더 정직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멀리까지 따라오셨는지를 보여줍니다. 가장 깊은 버림받음의 자리까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이 그 외침을 지르셨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그 외침을 지르지 않아도 됩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은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선언합니다. 이 확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예수님이 먼저 그 끊어짐을 경험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다가 하늘이 막힌 것 같고,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을 때, 시편 22편이 그랬듯이 그 탄식 자체를 하나님 앞에 가져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어둠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그 어둠의 가장 깊은 곳을 통과하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의 그 외침은 패배의 비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온 인류의 죄를 삼키고, 버림받음의 형벌을 다 완수하고, 부활의 아침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의 절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버림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품 안에 있습니다.
주요 성경 구절
마 27:46 · 막 15:34 · 시 22:1 · 시 22:14-18 · 사 53:6 · 고후 5:19-21 · 롬 8:32 · 롬 8:38-39 · 히 5:7
자주 묻는 질문
예수님의 외침은 시편 22편을 인용한 것인가요?
예수님이 버림받으셨다면 삼위일체는 깨진 것인가요?
삼위일체의 존재론적 연합은 영원히 깨지지 않습니다. 고후 5:19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관계적·경험적 차원에서 예수님은 죄의 형벌이 가져오는 하나님과의 분리를 실제로 감당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대신 받으신 형벌의 실재성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연기가 아니었습니다(히 5:7).
예수님은 왜 다른 말이 아닌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셨나요?
예수님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성경을 통해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분이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시 22편은 고난받는 의인의 원형으로서, 그분이 겪으시는 일이 하나님의 뜻 밖에 일어난 우연이 아니라 오래전 예언된 사건의 성취임을 선언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요 19:28에서도 예수님은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행동하셨다고 기록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십자가에서 고통을 겪으셨나요?
성경은 이를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고후 5:19은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고 말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고통에서 멀리 계셨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롬 8:32은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내주셨다고 합니다. 이 표현 자체가 그 행위의 희생적 무게를 담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냉정한 처벌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함께 치르신 대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다고 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예수님이 시 22편으로 기도하셨다는 사실은, 우리도 그 탄식의 언어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외침을 억누를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어둠을 통과하셨고, 롬 8:38-39는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버림받음은 실재하는 감정이지만, 십자가와 부활이 선언하는 사실은 우리는 결코 버려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